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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an/feedback

재정비의 해

by mattew4483 2023. 12.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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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뜨리고, 다시 짓고.

1년 전 이런 글을 썼었다.

from 2022년 회고

예상은 적중했고, 팀은 피봇을 결정했다.

 

올해 6월 말. 대표의 입에서 처음으로 피봇과 관련된 얘기가 나왔다.

혼란스러웠고, 허탈했고, 화가 났다.

 

피봇을 결정한 이유는 간단했다.

2년 동안 서비스를 운영하며 모은 500여 곳의 애견 미용샵.

이들에게서 돈을 받아낼 방법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몇 년. 모두가 행복회로를 돌리고 있었다.

  1. 일정 수준의 활성 애견 미용샵을 점유한 후
  2. o2o 플랫폼으로 나아가
  3. 예약 중계 수수료로 돈을 벌고
  4. 커머스까지 확장한다.

이 (망상과도 가까운) 생각이 팀의 2년을 지배했다.

 

뭐 하나 명확하고 구체적인 게 없었다.

o2o로 넘어갈 만큼 충분한 숫자의 미용샵은 얼마 정도인지,

애견 미용 시장의 보호자와 미용사들에게 비대면 플랫폼이 얼마만큼 필요한지,

중계 수수료를 낼 만큼의 가치를 줄 수 있는지,

커머스를 어떻게 구축할 것인지.

질문들에 대한 답은, 하나 같이 두리뭉실하고 근거가 없었다.

 

올 초.

코로나가 사그라들며 부풀어 올랐던 벤처 투자 거품도 점점 꺼지기 시작했다.

얼마 지나지않아 산업 전반적으로, 특히 스타트업씬에 차가운 폭풍이 몰아쳤다.

우리 팀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전까지는 o2o 진출을 핑계로 서비스 유료화를 미뤄왔다.

미용샵 유입을 늘여야 한다는 이유로, 모든 기능을 유료로 운영했다.

하지만 단순 유입으로는 더 이상 투자자의 이목을 끌지 못하게 되었고 (사실 그게 정상적이지만)

올해 중순 정도가 되어서야, 돈을 받을 수 있는 기능들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돈을 받지 않는 서비스는, 아무런 의미도 없음을 뼈저리게 느꼈다.

결과는 참담했다. 만원을 결제하게 만드는 것조차 힘들었다.

하지만, 사실 모두가 알고 있었다.

영세한 개인 사업자에 불과한 애견 미용샵.

당장 원가 몇 천 원을 줄이는 데 혈안이 되어있는 소규모 업장.

소비자가 많아져도, 하루 예약 건 수 자체를 늘일 수 없는 사업 구조.

이런 곳에서… 소프트웨어 서비스에 돈을 결제하게 만들기란 불가능했다.

 

6월 말에서 7월 초.

예약 링크, 예약금 선결제, 리뷰 캐쳐, 놀면서 미용 등.

기존 서비스의 유료화 방안을 찾는 동시에... 처음으로 피봇과 관련된 업무가 진행되었다.

수익화도 아직 시도해 볼 만한 것들이 남아 있고, 피봇은 아직 명확한 방향이 나오지 않은 상태였기 때문에,

하나라도 구체적인 결론이 나오기 전까지는 두 방향을 동시에 진행하는 게 나으리라 판단했다.

그리고 8월 초.

대표가 주관한 (마지막) 회심의 서비스인 놀면서 미용이 처참하게 막을 내렸다.

 

그렇게 본격적인 피봇팅이 시작되었다.

쌓아 둔 모든 걸 무너뜨리는 기분이란.

정말 많은 아이디어를 떠올리고, 논의하고, 테스트하고, 좌절했다.

30분 만에 실패로 돌아간 아이디어도,

지인들을 활용해 이리저리 테스트해 본 아이디어도,

랜딩 페이지를 만들어 마케팅까지 돌린 아이디어도 있었다.

그중 유의미한 성과가 있던 9개의 아이디어를 조금씩 디벨롭했지만…

결론적으로는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그렇게 깨지고 깨지던 어느 날.

나인하이어라는 부산 소재 스타트업 대표님과의 논의 중,

내가 이전에 제안했던 온보딩 sass와 관련된 니즈를 엿보게 되었다.

본격적으로 팀의 방향성이 정해진 순간

이전 서비스를 운영할 때 우리가 직접 겪었던 문제였으며

외국에 유사한 서비스가 존재했고 (장점인지 단점인지, 아직도 잘 모르겠다)

타겟군이 바로 주변에 있다는 점에서 제법 긍정적으로 다가왔다.

남은 건? 행동하는 것뿐.

 

스타트업 대표들을 인터뷰하며 제품의 가치를 사용자에게 전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음을 확인했고,

다양한 시도를 통해 기술적인 구현 방법을 정립했으며,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사용자가 사용할 수 있는 실제 제품 형태를 제공해 반응을 살펴봤다.

짓고 또다시 부수고 다시 짓고

그간 지어온 모든 것을 부쉈고,

다시 그 위에 무언갈 짓기 위해 재정비한 한 해.

 

물론 그 과정에서, 아니 매일매일 수많은 변화를 겪었다.

아직까지 이게 잘 되리라는 확신조차 없다.

 

아주 가끔은 혹시..? 하는 생각도 든다.

2년 넘게 걸어왔던 길에서 너무 허망하게 돌아온 건 아닌가 하는 자괴감도 플러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용자와 함께 만들어가는 기쁨.

눈앞에 닥친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중이라는 설렘.

돈이라는 수단으로 가치를 증명할 수 있다는 두근거림 등.

처음 스타트업에 뛰어들었을 때 바라왔던 감정들을 다시 한번 마주할 수 있던 한 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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